넷 러너는 전설적인 작가 리차드 가필드의 1996년 작품이며 리차드 가필드가 스스로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꼽는 작품입니다. 뇌에 해킹장비를 연결하여 서버 안에서 활동한다는 혁신적인 게임 테마와 독창적이고 테마를 잘 살려내는 게임 구성으로 인기몰이를 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작품입니다. 확실히 대단한 발상이긴 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나왔을 때 쯤이고, 공각 기동대가 유명해지기 이전이며, 매트릭스는 나올려면 한참 멀었을 때 이니까요.
테마도 앞서갔지만 게임 내용도 시대를 앞서갔으며 이런 게임의 밸런스를 잡는 것은 리차드 가필드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매직 더 개더링 역시 리차드 가필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발전 시킨 것에 가깝습니다. 리차드 가필드가 초기에 이상한 밸런스 철학으로 만들어낸 전설의 사기 카드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 당시의 어떤 게임과도 유사하지 않았고, 게임은 비대칭 게임이라 밸런스 잡기도 어려웠습니다. 뭔가 대단하긴 한데 익숙하지 않고 밸런스도 좀 이상한 작품 정도로 당시 유저들에게 받아들여져 이 작품은 작가와 아쉬워하는 팬들을 뒤로 하고 3판 나올 때쯤 GG친 비운의 TCG로 남았습니다.
오래 동안 저주받은 걸작으로 회자되던 작품이기에 누군가 재발매 좀 하면 안될까? 하는 생각은 그간 많은 이들의 망상 속에 있었는데 16년이 지나 2012년 결국 미국 오타쿠 보드게임 회사 판타지 플라이트 게임즈에 의해 재창조되었으며 일러스트 등은 판타지 플라이트 게임즈의 SF 게임 안드로이드 설정이 씌워졌습니다. 안드로이드가 복제 인간이나 인간형 로봇을 만드는 거대 회사들이 이권 다툼을 벌이고, 이들에 의해 값싼 노동력이 양산되며 하층민들이 일자리를 잃는 뭐 그런 사회상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 넷 러너와 잘 맞기도 합니다.
게임은 뭔가 구린 비밀을 가진 거대 기업과 이를 노리는 해커의 대결입니다. 기업은 광고를 하고 광산을 개발하며 자금을 얻어서 비밀 프로젝트를 가동시키고 해커 침임에 대비한 방화벽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해커는 이를 무력화시킬 장비를 구축하고 목숨을 건 서버 침투를 감행합니다. 둘의 입장이 공격, 방어로 반대이며 둘의 플레이 방식도 다르고 득점 방법 또한 다른 비대칭 게임의 묘미가 있습니다. 밸런스는 장담할 수 없으므로 둘이 역할을 바꿔서 한번 더 해야 합니다.
게임에서 가장 재미있는 점은 역시 테마입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세계관 이야기를 조금씩 담고 있는 카드를 읽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으며 카드와 카드 사이의 궁합과 상성이 있어서 연구 가치 또한 높습니다. TCG 게임은 서로 준비한 덱의 상성에 따라 승패가 거의 갈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 게임은 그런 면이 덜합니다.
반면 게임 템포가 느리고, 게임의 결정적인 승부처가 운이라는 느낌을 주는데 이것은 코어 세트로는 해결이 안되는 부분입니다. 어찌 보면 바퀴벌레 포커를 아주 어렵게 한 기분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퀴벌레는 암울한 사이버 스페이스의 미래상을 이야기하며 즐길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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